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도 밀약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[[일본]]이 [[독도]] 소유권을 주장할 때 '''매우''' 자주 인용하는 문건이 1964년에 작성된 밴플리트 보고서라 불리는 문건이다. 당시 [[미국]]은 [[한일관계]] 개선을 급속히 바랐고, 당시 독도는 그 관계에 걸림돌이 되었다. 이런 배경 하에서 미국이 독도를 일본의 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적었는데, 이때 이후로 한일기본조약 때도 미국은 한일관계에 깊숙히 관여하게 된다. 비슷한 시기 [[박정희]] 대통령이 "일본에게 주느니 독도를 폭파시켜 버리겠다"고 발언한 바 있어 논란이 있었다.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15&oid=055&aid=0000036801|#]] 현재 독도 밀약은 폐기되었거나, 그 내용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란 의견이 있다. 독도 헬기장이나, 접안시설의 개축등 3번 조항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행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. [[박정희]] 정권에서 [[한일기본조약|이 밀약을 맺은 시기]]에 일본 정부 및 기업에게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비판을 받았으며, [[전두환 정부]]에서 관련 자료를 폐기한 뒤에도, 비슷한 내용의 밀약을 다시 맺어 일본에게서 차관을 빌려썼었다는 보도가 나왔다. 이후 [[김영삼 정부]]에 들어서서 독도에 대한 수비를 강화하여 밀약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밀약의 연결고리가 끊겼다는 반응이다. 다만 조약의 일부(3번 조항)에는 상황에 따라 변화가 생겼어도 전체적인 틀은 여전히 유지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. 아직도 독도 기본 계획 등이 말만 있고 실행이 안 되는 점 등을 들어 여전히 정부가 밀약을 준수하여 독도에 대해 말만 하고 실질적 조치를 안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. [[중국]]과 [[일본]]이 영유권분쟁 중인 [[센카쿠 열도]](중국명 [[댜오위다오]]) 분쟁에서도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. 진찬룽(金燦榮) [[중국인민대학]]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이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때 센카쿠에 관한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는 '묵계(默契)'가 존재하고 있으며, 1978년 [[덩샤오핑]]이 일본을 방문해서 이를 재확인했다는 것. 물론 이에 대해서는 센카쿠를 실효 지배중인 일본이 부인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